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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랜드
허랜드
  • 저자<샬럿 퍼킨스 길먼> 저/<권진아> 역
  • 출판사arte(아르테)
  • 출판일2020-06-17
  • 등록일2020-1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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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소개

급진적인 페미니스트 샬럿 퍼킨스 길먼이 쓴
페미니즘 유토피아 소설의 고전

19세기 후반과 20세기 초, 많은 페미니스트들이 여성의 사회적 역할 변화를 촉구하며 여성 해방, 여성참정권 운동 등에 힘썼다. 샬럿 퍼킨스 길먼은 그중에서도 단연 두드러진 페미니스트 사상가이자 정력적인 활동가, 미국과 영국 전역에서 영향력을 발휘한 강연가였으며, 직접 발행한 잡지 『포러너』를 비롯한 여러 지면을 통해 소설, 시, 희곡, 에세이, 평론 등 거의 모든 장르에 걸쳐 방대한 글을 쏟아 내며 문학적 재능과 사회적 사상을 펼쳤다. 여성들로만 이루어진 유토피아를 그린 장편소설 『허랜드』는 1915년에 길먼이 『포러너』에 연재한 작품이다. 생전에 길먼의 문학 작품들은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지만 1973년 「누런 벽지」가 대중에게 소개되어 재조명받은 이후 관심이 고조되면서 또 다른 대표작 『허랜드』 역시 1979년에 단행본으로 정식 발간되며 ‘새로이 발굴된’ 페미니즘 고전의 반열에 오른다.

길먼이 살아가던 19세기 후반은 진보와 발전에 대한 믿음과 미래에 대한 낙관이 팽배하던 시기로, 그 같은 열망을 담은 유토피아 픽션의 전성기이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쏟아져 나온 작품들 속 이상 사회에서도 여성의 지위와 역할은 구태의연한 인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SF... F.. C. 시리즈 『허랜드』를 번역한 권진아 번역가는 길먼이 “평생에 걸쳐 추구한 사회주의와 페미니즘을 대중들에게 전달하기에 가장 적합한 매체”로 유토피아 픽션을 택해, 장르 관습을 충실히 따르되 “근대적 기획에서 소외되었던 여성들을 개혁의 주체로 삼음으로써 이상적 사회에서조차 여성을 지우거나 소외시키는 젠더화된 장르 관습에 도전”했음을 지적한다. 여전히 여성은 인간이 아닌 여성일 뿐이던 유토피아에 대한 상상력을 여성이 인간으로서, 주체로서 등장하는 이야기로 바꿔 내며 상상력의 지평을 확장한 것이다.

저자소개

미국의 페미니스트, 비평가, 사회개혁가, 연설가, 시인. 1860년 7월 3일 미국 코네티컷 주의 하트퍼드에서 메리 퍼킨스와 프레데릭 비처 퍼킨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의 생각은 페이비언 사회주의와 이후 페미니즘이라고 불리는 이념으로 발전하였다. 누런 벽지(The Yellow Pape) 작품으로 남성 중심적인 미국 사회에서의 억압된 여성의 삶을 드러내면서 여성주의 작가로 잘 알려지게 되었다. 

일찍이 아버지의 가출로 어머니와 함께 친척 집을 전전해야 했던 길먼은 가난하고 불안정한 유년시절을 보냈다. 그때부터 공공 도서관을 드나들며 수많은 고전을 탐독하고, 위대한 여성 작가들의 작품을 동경하며 문필가의 꿈을 키운다. 

『톰 아저씨의 오두막』을 쓴 해리엇 비처 스토 등 스토 가문 친척들의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심각한 가난 때문에 일곱 군데 학교를 옮겨 다니는 등 제도권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으며 열다섯 살에 그마저 중단되었다. 고립되고 외로웠던 어린 시절, 도서관을 자주 찾아가 책을 읽었다.

1878년 로드아일랜드디자인스쿨에 입학해 공부한 후 카드 디자이너, 가정교사로 일했으며, 화가로도 활동했다. 1884년 화가 찰스 월터 스텟슨과 결혼하나 이 결혼이 자신의 인생을 위한 올바른 결정이 아님을 직감한다. 다음해 딸 캐서린 비처 스텟슨을 낳은 후 전통적인 아내와 어머니 역할에 염증을 느낀 길먼은 수차례 자살 시도를 하는 등 산후우울증을 심하게 앓기 시작했다. 당시 산후우울증은 단순히 히스테리로 취급받았기 때문에 의사는 그녀의 증상을 무시하고 지적 활동을 중단하고, 육아와 가사에 전념하라는 처방하며 상태를 악화시켰다. 이 경험을 바탕으로 미국 페미니즘 문학이 선구적 작품 「누런 벽지」를 집필하고, 마침내 강압적인 치료를 거부함은 물론, 이혼에도 성공한다. 

1888년 이혼이 아주 드문 시기였음에도 남편과 별거를 시작했다. 별거 후 딸과 함께 캘리포니아 주 패서디나로 이사했으며, 1890년 본격적으로 작가, 페미니스트로서의 삶을 시작하고, 여성의 경제적 독립과 참된 자유를 역설한다. 태평양여성언론인협회 및 부모협회 등의 여러 페미니스트 및 개혁가 단체에서 활동했다. 1895년까지 태평양여성언론인협회가 발행하는 문학잡지 [임프레스]의 편집장을 지냈다. 1896년에 열린 워싱턴 D.C 미국여성참정권 컨벤션에서 캘리포니아를 대표하기도 했다. 

1896년 이후에는 사회운동가로서 활발히 활동했다. 특히 미국 워싱턴에서 열린 미국여성참정권협회대회와 영국 런던에서 열린 국제사회주의노동총회에서 미국 캘리포니아 대표로 활약했다. 1897년에는 4개월간에 걸친 강의 투어를 마치고 남녀의 성차별과 경제를 주제로 한 연구를 더 깊이 진행했다. 1900년 사촌인 조지 휴턴 길먼과 재혼했다. 1903년 베를린에서 열린 국제여성대회에서 연설을 했으며, 다음 해에는 영국, 네덜란드, 독일 등을 순회했다. 이 해에 집필한 『가정: 그 역할과 영향(The Home: It’s Work and Influence)』은 논쟁이 된 책으로, 여성이 가정에서 억압받고 있으며,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이 건강상태에 맞게 개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1909년 잡지 [선구자(Forerunner]를 창간하여 1916년까지 여성운동을 주제로 한 시와 소설, 논픽션을 발표하였다. 여성의 정치 참여를 독려하며 여성 정당을 조직하고, 미국 전역에서 다채로운 페미니즘 운동, 인권·동물 생명권 운동을 전개하던 중 유방암 선고를 받는다. 1935년 유방암에 걸린 것을 비관하여 자살로 캘리포니아주 패서디나에서 사망한다. 

페미니즘은 19세기 중반에 시작된 여성 참정권 운동을 기반으로 여성의 사회진출과 성공을 막고 정치적 권리까지 억압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타파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는 여성해방 이데올로기이다. 이는 교육과 고용에 있어서의 평등 또한 추구하였다. 샬롯 퍼킨스 길먼은 1911년과 1914년에 “여성중심적인, 보다 어머니 중심적인 세상,” “여성이 운영하는 정부”를 만들자고 주장했다. 길먼은 남자와 여자가 서로 다른 특질을 가지고 있기에 양성이 모두 “유용”하며, 양성이 모두 정부를 운영하며 상호 협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다른 저서로는 『여성과 경제학(Women and Economics)』, 『다이앤서가 한 일(What Diantha Did)』, 『십자가(The Crux)』, 『내가 깨어났을 때(Moving the Mountain)』, 『허랜드(Herland)』, 『그녀와 함께 내 나라로(With Her in Ourland)』,  『아이들에 관하여』(1900), 『가정』(1903), 『남성에 의한 세상 혹은 남성중심주의적 문화』(1911), 『그의 종교와 그녀의 종교』(1923),  『산 옮기기』, 『샬럿 퍼킨스 길먼의 삶』, 단편 「누런 벽지(The Yellow Wall paper)」 등의 작품을 남겼다.

목차

1장 이상하지 않은 계획 
2장 경솔한 전진
3장 기묘한 감금 
4장 모험
5장 독특한 역사
6장 불쾌한 비교 
7장 겸손해져 가는 우리 
8장 허랜드의 아가씨들
9장 관계의 차이
10장 이곳의 종교와 우리의 결혼 
11장 우리의 시련
12장 추방 

역자 해제 - 여성에서 인간으로
샬럿 퍼킨스 길먼 연보 

한줄 서평

  • 별점4개2022-04-19 수정 삭제 http:imrdsoacha.gov.cosilvitra-120mg-qr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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